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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스토리 공부/감상문

디즈니플러스 <비질란테>

공개일: 2023년 11월 8일~2023년 11월 29일

공개회차: 8부작

제작사: 스튜디오N

연출: 최정열

극본: 이민섭

원작: 김규삼 <비질란테>

출연: 남주혁, 유지태, 이준혁, 김소진 외

개요: 낮에는 법을 수호하는 모범 경찰대생이지만, 밤이면 법망을 피한 범죄자들을 직접 심판하는 '비질란테'로 살아가는 김지용과 그를 둘러싸고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 스릴러.


비질란테는 자경단이라는 뜻이다.

주인공 김지용의 어머니는 동네 건달에게 맞아 사망하지만, 건달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지용은 어머니의 죽음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가벼운 판결이 나와 미소 짓는 건달의 모습도 본다.

지용은 자라서 경찰대 학생이 된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은 그를 비질란테가 되게 만든다.



비질란테는 대중의 환호를 받는다.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지만, 죄에 비해 가벼운 형량을 받는 범죄자들을 보며 분노만 했는데

직접 이들을 처단하는 다크 히어로가 등장하니 대중은 환호했다.

그리고 그의 처벌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사건들이기 때문에 제법 의롭게 보인다.

비질란테를 따르는 자들이 늘면서 사회적 혼란이 찾아왔다.

각자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남을 판단하고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를 의로운 일이라 여기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지용은 자신이 옳고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지용에게 조헌은 "너의 행동이 정말 정의롭다고 생각하냐, 정의를 핑계로 휘두르는 폭력에 도취한 적은 없냐, 남을 판단한다는 우월감에 빠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냐?"고 묻는다.

사적 제재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사였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법과 달린 사적 제재는 개인 판단으로 처벌하고 처벌 강도를 조절한다.

한 마디로 검증 장치가 없다.

완벽한 인간은 없고,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한낱 인간이 '나는 저 정도 쓰레기는 아니야.'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고 처벌하고 자신을 우위에 둘 때 사적 제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무슨 자격이 있기에 남을 심판하고 정죄할 수 있는가.



하지만 지용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이해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국민의 신뢰에 보답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의 역할과 문화 때문이다.

<비질란테> 뿐만 아니라 <국민 사형투표>라는 드라마도 과거 웹툰이었던 콘텐츠가 드라마화되며 재조명되었다.

그리고 그 반응 역시 나쁘지 않았다.

드라마 콘텐츠는 물론 유튜브에서는 실제로 사적 제재를 하는 유튜브 콘텐츠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다들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드라마를 볼 때는 나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정의감 중독 상태가 아닐까?

정의를 내세워서 누군가를 심판하는 것이 정체성이 되어버렸고,

복잡한 사회를 다각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저 선과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


이렇나 경향은 성장이 정체되고 경쟁이 극심할수록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더불어 영상 콘텐츠, 특히 짧은 영상의 콘텐츠 소비가 확산하면서 콘텐츠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볼 여유가 사라졌고,

문맥을 파악하는 능력도 상실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도 감소하고 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확증 편향에 따라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며 행동하게 되고

가용성 휴리스틱에 따라 본인의 생각에 맞는 정보만 골라 편향된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문화의 문제는 사회 문제를 바라볼 때 문제 원인 해결이 아닌 가해자 처벌에 초점을 둔다는 점이다.

가해자가 가해할 수 있게 만들어 둔 사회 문제에 초점을 두어야 근본적인 사회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지용은 법체계가, 사회 체계가 바뀌어서 가해자가 계속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계속 피해자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자신은 지금의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용 역시 사적 제재가 아닌 법에 의한 사회 질서를 원했다.

(작은 행동까지도 법이 있는 사회가 안 좋은 사회라는 연구도 있기에 법 없이도 사람들이 알아서 착하게 살아가는 게 최고고)우리의 분노는 가해자를 향할 것이 아니라 이런 허술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있는 사람들에게 향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을 감시하고, 좋은 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판결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쩌면 진짜로 비질란테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단군 이래 가장 좋은 스펙이지만 가장 취업하기 힘든 정체된 경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 최고조인 사회

알고리즘에 지배받아 초개인화가 됨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이해를 멈춘 문화

내가 지금 적는 이 말들도 한 쪽에 치우친 생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지도자들은 사회 시스템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개인은 타인을 이해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서 비질란테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